김건희 여사 ‘집사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극심한 정치·사법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 특검 수사를 받은 인물이 전북은행장 후보로 부상했다가 금융권과 여론의 거센 반발로 사실상 인선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방은행 최고경영자 인선 과정에서 특검 수사 대상 인사가 검토됐다는 사실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사태의 본질은 그 이후 드러났다.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던 12월 18일, 전북은행은 은행장 선임 관련 보도자료를 전격 배포했다. 이미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 일정이 돌연 연기되며 인선 절차가 멈춰선 상황에서 나온 이 보도자료는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여론을 자극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상황 인식이 전혀 없는 대응”, “여론을 조롱하는 문서”라는 격앙된 반응이 이어졌다. 특검 수사, 사법 리스크, 정치권 연계 의혹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문제의 후보는 김건희 여사 측 핵심 인물로 알려진 이른바 ‘집사’ 관련 의혹의 중심에 있는 IMS모빌리티 투자 건으로 특검 수사를 받았고, 지난 7월 직접 조사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IMS모빌리티는 투자 당시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고, 대가성 자금 제공 의혹과 정치권 연계 의혹이 동시에 제기된 고위험 기업이었다. 정상적인 금융 판단 기준에서는 접근 자체가 극도로 제한됐어야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전북은행은 이 인물을 지역 대표 금융기관의 수장으로 검토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단순한 인사 실패로 보지 않는다. 사법 리스크를 인지하고도 눈을 감았거나, 정치적 고려가 금융 원칙을 압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구조적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이 있다. 김기홍 회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지주 회장 3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JB금융에서는 IMS모빌리티 투자, 전북은행장 인선, 김건희 여사 관련 후원사이자 특검 조사 대상 기업인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JB금융 서소문 신사옥 설계 수주가 연이어 진행됐다. 이 모든 결정이 특정 시기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우연”이라는 설명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기홍 체제의 JB금융이 과연 민간 금융사인지, 아니면 권력 친화적 금융 조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역은행이라는 외피 뒤에 숨어 정치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해왔다면, 이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공공금융에 대한 배신이다.
전북은행은 정책자금 운용과 중소기업·서민 금융을 담당하는 공적 성격의 지방은행이다. 사법 리스크를 안은 인물을 은행장 후보로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검증 실패’가 아니라 ‘검증 포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전북은행이 18일 배포한 보도자료는 ‘절차적 검증’과 ‘선임 일정’만을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강행 의지를 숨긴 면피용 문서”, “시간 끌기용 방패막이”로 평가한다. 실질적 해명 없이 형식만 강조하는 대응은, 논란을 관리 대상쯤으로 여기는 태도로 비친다.
이 같은 인식은 내부 회의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12월 19일 열린 전북은행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공유된 내용에 따르면, 은행장 선임 논란의 발단은 금융감독원의 문제 제기였으나 이미 감독원에는 소명이 끝났고, 임원 선임 절차는 그대로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 내부에 전달됐다. 더 나아가 “김기홍 회장과의 면담에서도 이상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노조의 태도도 공유됐다. 집행위 회의에서는 “은행장 선임이 이사회에서 통과되면 노조 차원의 이의 제기는 없다”는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가 사실상 인선 문제에서 발을 뺀 셈이다.
또한 금융감독원이 JB우리캐피탈에 대해 진행 중인 감사 역시 “금일 또는 다음 주 초 종료 예정”이라는 내부 설명이 나왔다. 감사 종료 시점에 따라 30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공유됐다. 이 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집사 게이트’ 특검 종료 예정일인 12월 28일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점도 주목된다.
이 집행위 회의 내용을 종합하면 내부 결론은 명확하다.
① 금융감독원 문제 제기는 형식적 소명으로 정리됐고
② 노조는 사실상 이탈했으며
③ 특검 종료 시점만 넘기면
④ 외부 리스크는 관리 가능하고
⑤ 은행장 선임은 예정대로 간다는 인식이다.
이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전략에 가깝다. 김기홍 회장이 감독당국, 특검, 노조를 모두 ‘관리 가능한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는 강한 정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사전 교감으로 넘기고, 특검은 곧 끝나니 기다리면 되고, 노조는 성과급과 조직 안정으로 달래면 된다는 계산이 내부에 공유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가 명확하다면 특검 종료 여부와 무관하게 즉각 인선을 철회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특검이 끝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금융기관으로서의 윤리와 공공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 행태가 결과적으로 이재명 정부와 금융당국에 대한 공개적 도전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강조돼 온 금융 공공성 회복, 권력형 금융 유착 청산, 내부통제 강화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김기홍 회장의 ‘버티기 전략’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시험해 보겠다는 메시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제 시선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향한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예의주시’ 수준으로 방치한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검 수사 대상 인사에 대한 은행장 검토, 정치권 유착 의혹, 내부통제 실패 정황이 동시에 드러났음에도 개입하지 않는다면 금융감독 체계의 신뢰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북은행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은행장 인선 전면 백지화, 책임 있는 사과, 외부가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재검증 절차다. 그렇지 않다면 전북은행은 ‘지역 금융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 리스크에 포획된 지방은행의 대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논란은 전북은행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김기홍 회장 개인의 판단을 넘어, JB금융,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금융 개혁 기조 전체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시험에 침묵으로 응답한다면,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김민우 / 더케이글로벌 대표














